Life Essay

퇴사 5개월 전 (퇴사 5개월 전퇴사를 위한 준비 / 2. 스스로 하는 중간 점검)

"2년만 다니자, 2년 동안 퇴사 준비를 하고 그만두자."

 

지난 2017년 7월 3일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마음먹었었다.

"2년만 다니자, 2년 동안 퇴사 준비를 하고 그만두자."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인 나는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것은 있었지만 당장은 그럴 수 없었던 나의 퇴사 준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년을 제한 시간으로 잡았던 이유는 첫 직장 3년 이후 2년씩 홀수 연차에 이직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의도는 결과로 인해 구직을 해야 될 경우를 대비한 소심한 보험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2년 정도의 기간이면 회사에 잘 적응하여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시점인데 이는 나와 같이 천성이 게으른 사람 안주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안주하는 삶과 편안함이 주는 도태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이런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근차근히 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만두기까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무엇을 해야겠다는 식의 세부적인 계획을 짜고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퇴근 이후의 생활도 쪼개가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투자했던 그동안의 시간들이 지나고 나에게는 이제 딱 5개월이 남아있다.

카페 자그마치 @ 성수동

영화 광복절 특사 중 두 주인공이 탈옥 직후의 상황에서 나누는 대화가 내가 생각하는 퇴사와 절묘하게 매치된다.

설 : 빨리 가자고! 어?!
차 : 어디로?
설 : 기어 나온 목적이 있을 거 아니냐고 인마?!
차 : 내 목적은 나오는 거, 그게 전부다.
설 : 글쎄 왜 나와야 되냐고 왜!?
- 중략 -
설 : 차, 옷, 가짜 신분증, 그게 탈옥이야 이 등신아. 도대체 XX 땅굴 말고 해 놓은 게 뭐야?
계획성 없이 무턱대고 나오니까 이렇게 자꾸 죄만 짓게 되는 거라고. 어!
미리미리 준비를 했었어봐, 어, 법을 어길 이유가 없잖아!

영화 "광복절 특사" 링크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땅굴이라도 제대로 파두었을까?

 

지난 1년 반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1. 회사생활 잘하기, 멘탈, 체력 관리

주중에는 퇴근하고 회사를 잘 다니기 위해 필요한 영어공부와 기본적인 운동을 꾸준히 해왔었다.

그리고 퇴사 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자격증 공부와 작업을 준비했었다.

회사를 잘 다니기 위한 영어공부는 왜 했을까? 물론,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개인의 앞길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루의 반이나 되는 시간을 보내는 업무시간에서 생기는 문제와 갈등을 최소화해야지만 퇴근 후의 삶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아무리 퇴사를 하는 것이 목표라지만 내일 아침에 당장 '에잇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하는 마음으로 그만두는 모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회사생활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잘해야 된다는 말이다.

 

2. 자격증 취득

디자인 회사로 독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관련 자격증을 먼저 취득하자는 마음으로 초기 1년 동안 회사에 적응함과 동시에 퇴근 후 운전면허와 실내건축기 자격증을 포함한  세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렇다 그 전엔 운전면허가 없었다... 남들은 학창 시절에 준비하던 것들을 뒤늦게 정신차린 것일 수도... 반성하자.

퇴근 후에 자격증을 준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3. 고정 수입 만들기

처음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당장에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돈이다.

안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인 나는 퇴사를 하더라도 회사 밖의 활동이 경제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 안정된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 때 환승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고 도적으로 고정적인 추가 수입원을 만들어야겠다고 작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격증 취득 후 디자인 프로그램 수업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아 그 이후로 지금까지 주말마다 디자인 프로그램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운이 좋았다. (좋은 기회 주신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받는 월급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고 투자나 부동산으로 일하지 않고 벌어들이는 수익은 아니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준비를 하다 보니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고정적인 수입원은 확보되어있는 상태이다.

(사진으로도 곧 수익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4. SNS, 브런치 글쓰기

사진 찍는 취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평소 SNS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인스타그램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찍어온 사진들을 꾸준히 업로드하려고 노력 중이다.

브런치의 경우에도 기존에는 에버노트에 업무와 일상을 보내면서 느낀 것들을 일종의 일지와 같이 간단한 메모로 남기곤 했었는데 얼마 전부터 브런치에다 적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이 발행되어 누군가가 읽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혼자서 적던 글을 조금 더 정확하게 쓰기 위해 찾아보고 공부를 하게 되더라 사진 또한 마찬가지이다.(연예인들의 카메라 마사지가 이런 맥락일까..?)

동호회를 하듯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혼자서 만족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니 재미있는 일이다.

 

5. 놀러 다니기

취미 생활을 하거나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 혹은 친구들과 어울려 짧게라도 여행을 가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 한마디로 워라밸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보다 어릴 땐 공부 안 하고 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죽어라 한 것도 아니지만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노는 것을 금기시 하는 기분..

일에 쫓기며 파묻혀 사는 것보다 일과 일상의 균형을 잘 유지며 잘 놀고 잘 쉬는 것이 더 의욕적이고 활기차게 일상을 보낼 수 있더라. 무엇보다 일을 하는 이유와 삶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돈만 벌자고, 죽어라 일만 하자고 사는 건 아니니까.

 

무엇이 부족할까?
힘들 땐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이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연말연초 업무에서 오는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개인 시간에 유지해오던 것들과 합쳐져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버렸다.

(투정 조금 하자면 몸이 아프다... 굳이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어 진다...)

조금 내려놓고 쉬고 싶은 마음에 "2년 그거 뭐라고 채우지 말고 그만두자, 좀 쉬어야지.."는 마음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네가 그동안에 뭘 얼마나 준비했는데? 나가서 살아남을 수 있어? 여유를 가지고 놀고 쉬었다가 좀 더 준비를 해" 하는 차가운 의구심이 동시에 말을 걸어온다.

이 참에 투정도 할 겸 스스로를 돌아볼 겸 이 글을 쓰기로 했었다.

만약 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지치고 힘들 때 처음 마음먹었던 순간을 생각해보자.

 

1. 백수가 되기 전에 어른들 찾아뵙고 인사

2. 3D 프린팅 배우기

3. 디자인 페스티벌 준비하기

4.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 만나기

5. 퇴사 하기

 

간단히 말하자면, 디자인을 직접 하는 것과 퇴사를 하는 것 정도가 남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자신만의 기준은 있어야 한다.

 

내가 앞서 해왔던 모든 것들을 하지 않고서 퇴사를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겁쟁이 같이 퇴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이유, 방법 따위를 따질 시간에 그냥 저지르고 수습을 해갈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어떤 모습의 퇴사를 하고 싶은지 무엇을 위해 퇴사를 해야만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단순히 지금에 대한 불만과 스트레스 때문은 아닌지,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 퇴사하고 싶은 것인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부족한 것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기준이 있을 수가 없다.

무심코 흘려보내는 하루하루의 시간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는지에 따라 나를 조금 더 성장시켜줄 만한 것들이 충분히 있을 테니 말이다.

 

큰 선배님이 항상 해주신 말씀이 있다.

절대 그냥 보내는 시간은 없다고.

그렇다 시간은 그저 흐른다.

단지 그 시간 위의 나의 모습이 달라질 뿐.

 

@Brunch